밀라노 알기 04-2 밀라노의 주요인물

쥬셉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1813년 10월 10일 북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베르디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칭송받고 있으나 어릴 적부터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 신동은 아니었다.
18세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나 밀라노로 가서 밀라노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했다. 불합격의 이유는 두 가지가있는데, 첫째로 음악원의 입학 자격 연령을 4세나 초과한 것이고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투르고 소박한’ 음악 실력이었다.

이후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개인교습을 받아 작곡 공부를시작해 점차 작곡가로서 성공을 이루어 나가게 되며 1850년경이후로는 명실공히 이탈리아 오페라史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베르디에게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했던 밀라노 국립음악원은 1971년 학제 정비와 동시에 그의이름을 학교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 명칭은밀라노 ‘쥬셉페 베르디 국립음악원(Conservatorio di Musica “Giuseppe Verdi”)’이라 불린다.

그는 밀라노 태생은 아니었으나 생애의 대부분을 밀라노에서보냈다. 첫 번째 부인과 사별 후 연인이었던 테레자 스톨츠와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밀라노 사교계에 파란을 일으키기도했다. 베르디는 이와 같은 구설수로 인해 밀라노 생활에 대한스트레스를 자주 토로했음에도 불구하고 밀라노에 대한 애착역시 깊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말년을 보냈던 호텔 밀란(Hotel Milán, 현재Grand hotel et de Milan), 자주 산책하던 거리(via Manzoni)그의 무덤이 있는 Casa Verdi(※현재는 은퇴한 음악인들을 위한양로원으로 운영되고 있음) 등에서 밀라노 곳곳에 남아있는 그의자취를 느낄 수 있다.

베르디는 천재형 작곡가이기 보다는 노력형 작곡가로서장수하면서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 리골레토(Rigoletto),아이다(Aida)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기며 국민적인 추앙을 받았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압박하에 있어 완전한독립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탈리아 독립 운동의외침이 높아지던 시기에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인들의심정을 대변하는 스토리와 심금을 울리는 선율에 애국주의를주입함으로써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베르디는 음악가로서의 명성 이외에도 이탈리아인들에게 또 다른애국의 상징이었으며 그가 향년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을 때그의 장례식에는 20만 명이 넘는 대군중이 참여했다고 한다.

 

 

+본 기사는 주 밀라노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제공한 자료로 총 9편에 걸쳐 밀라노의 역사, 문화, 생활정보등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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