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알기 02-2 밀라노 역사

▶ 밀라노 공국 (Ducato di Milano, 1395-1796)

비스콘티가는 1277년에 이미 실질적으로 밀라노를 지배하고 있었다. 밀라노는 알프스를 넘는 대통상로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어 수공업, 공업(직조, 치금)과 농업(간척기술, 운하, 관개)의 중요한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1378~1402)는 일족의 광대한 영토(롬바르디아, 피에몬테와 베네치아 일부, 에밀리아와 이탈리아

중부의 몇몇 도시 등)를 통합해 1395년 신성로마황제 벤첼 4세로부터 밀라노공이란 칭호를 부여 받는다. 잔 갈레아초의사망 이후 아들인 조반니 마리아가 영지를 유지하지 못해 공국이 1412년, 조반니 마리아가 암살당하고 동생인 필립포 마리아가 대를 잇게 되면서 공국 재건이 시작되었다. 아버지 시대의 확장정책을 재개하면서 베네치아 화국과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10년 간의 전쟁(1423~1433)을 치르기도 했으나, 페라라 화약 체결로 마무리 되었다. 이때 밀라노 공국은 베네치아에 브레샤와 베르가모를 할양했다.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
밀라노의 상징으로 큰 뱀이 아이를
삼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기원은
불확실하나 아직도 밀라노 곳곳(
중앙역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435년에는 나폴리 왕국에서 조반나 2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하게 되는데, 왕위를 두고 발로아 앙쥬(Valois Anjou) 일가와 아라곤(Aragon) 왕가가 전쟁을 하게 된다.

필립포 마리아 비스콘티는 베네치아 및 피렌체와 동맹을 꾸려 발로아 앙쥬 일가를 조력했으나 아라곤 왕가가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아라곤 왕가는 구동맹군이었던 베네치아의 용병대장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Sforza)에 패해 나폴리를 넘겨주게 된다.

 

알파로메오의 엠블렘
밀라노를 상징하는 자동차 기업인
알파로메오의 엠블렘은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을 차용했다.

 

 

 

 

 

 

 

 

 

1441년 필립포 마리아는 크레모나 화약을 조인해, 베네치아에 영토의 일부를 할양하게 되고 크레모나를 혼수 삼아 외동딸인 비앙카 마리아를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와 혼시킨다. 1447년 필립포 마리아가 사망하고 밀라노에서는 군주 계승전쟁이발발하게 된다. 밀라노는 공화국 선언을 공포하고 스포르차 가문에 방위를 부탁하였으나, 필립포 마리아의 사위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밀라노공이라 칭하게 된다. (1450년).

베네치아는 롬바르디아에서의 지배권의 확대를 염두에 두고 아라곤왕 알폰소5세, 독일왕이자 신성로마제국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1440~1493)와 손을 잡고 스포르차 가문에 대적하는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은 4년이나 지속되었고 그 사이 오스만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1453)했다. 오스만제국의 동로마 함락에 위기를 느낀 베네치아가 화의를 희망하여 결국 1454년에 밀라노와 베네치아 사이에 로디 평화조약이 맺어져

이탈리아의 오랜 전란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평화조약은 스포르차 가문을 밀라노의 세습 군주로 인정하고 있으며, 베네치아는 에게 해의 영토를 일시적으로 반환하는 대신 아다 강으로 세력을 넓혔으며, 아라곤 왕국은 나폴리의 왕위에 대한 소유권을 최종적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이탈리아 신성동맹을 맺게 되었다. 로디 평화조약을 통해 달성된 이탈리아 내 정치적 균형은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죽음(1492년)과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1494년)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아들 갈레아초 마리아는 폭정을 일삼다 결국 살해당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잔 갈레아초는 숙부인 루도비코 일 모로에게 정권을 찬탈당했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아들이기도 한 루도비코 일 모로는 스스로를 조카인 잔 갈레아초 스포르차의 후견인임을 내세워 처음에는 조카의 섭정으로 있다가 그의 지위를 빼앗아 파비아로 보냈고, 갈레아초 스포르차는 1494년 파비아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나폴리 왕

페르난도 1세의 손녀인 베아트리체 데스테와 결혼해 정당한 후계자의 권리를 취득했었던 갈레아초 스포르차의 사망으로 인해 일 모로와 나폴리 국왕 페르난도 2세 간 대립이 격해지게 되었고, 루도비코 일 모로는 나폴리 왕국을 다시 복속하라며 샤를 8세를 선동(※1442년까지 나폴리 왕위는 프랑스 앙쥬 가문에 속했음)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밀라노 공국은 1494년 이후 프랑스와 스페인이 이탈리아 반도를 둘러싸고 70여년 간 지속된 이탈리아 전쟁에 휘말려 황폐해진다. 1559년에야 체결된 카토 캉브레지(Cateau-Cambrésis) 조약으로전쟁은 종결되고, 밀라노공국은 스페인에 복속되었다. 이후 밀라노 공국은 스페인,오스트리아 등 열강의 지배를 받다가 1797년에 나폴레옹에 정복되어 프랑스에 복속되고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왕대관식이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나폴레옹의 패망 이후, 1815년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밀라노 공국은 롬바르도-베네토 왕국의 일부로 오스트리아 왕국에 복속되었다.

 

+본 기사는 주 밀라노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제공한 자료로 총 9편에 걸쳐 밀라노의 역사, 문화, 생활정보등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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